
1. 보리의 원산지
보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0년 전 지금의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라크, 터키 남동부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야생보리를 사람이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이 지역은 야생 밀, 보리, 콩과 식물 같은 먹을만한 식물이 풍부해서 농경이 아주 이른 시기에 시작된 곳이다. 초기의 보리는 다른 곡물들과 마찬가지로 돌로 거칠게 빻아서 죽처럼 끓이거나 물과 기름을 섞어 반죽을 만들어 구워 먹었다. 밀보다는 껍질이 단단하고 향도 강해서 서민용 거친 곡물의 이미지가 강했고, 밀이 귀할 때 섞어 먹는 보조 곡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2. 보리의 전파와 확산
보리는 서남아시아에서 지중해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매우 일찍 퍼졌다. 기원전 7000~5000년경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밀, 보리, 완두를 함께 재배한 흔적이 발견된다. 특히 북유럽, 고지대, 냉랭 지역에서는 밀보다 보리가 추위와 건조한 환정에 강해서 더 중요한 곡물이었다. 밀가루와 섞거나 밀 없이 보리만으로 만든 거칠고 단단한 보리빵을 먹었고, 죽이나 야채, 고기와 함께 끓여 먹는 수프로 먹었다. 맥주의 핵심 원료가 되었고, 유럽에서 보리는 오랫동안 밀 빵 대신 먹는 값싼 빵 재료이자 맥주, 위스키의 원료로 인식됐다. 중동, 이란, 중앙아시아에서는 보리가 가축 사료와 사람의 음식 두 가지 용도로 쓰였다. 죽, 빵, 전병의 형태로 먹었고, 스튜나 요거트와 함께 먹는 곡물이 되었다. 언덕이나 건조한 기후에도 잘 자라서 밀 농사가 어렵거나 불안정한 지역에서 보험용 곡물이 되었다. 보리는 인도 북부, 파키스탄, 네팔, 티베트 등 동쪽으로도 멀리 퍼져나갔다. 고지대,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서 중요한 곡물이 되었다. 티베트에서는 보리차, 보릿가루, 버터를 섞은 짬빠가 대표 주식이 되었다. 중국 북서부에서도 밀, 기장, 조와 함께 재배되어 국수, 떡, 죽의 형태로 소비되었다.
3. 한국 유입과 확산
기원전 1000년경 이미 한반도에서 보리가 재배된 흔적이 나온다는 연구가 많다. 일반적으로 밀, 보리, 조, 기장이 중국 북부에서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같이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에서 근대 초까지 보리는 농민들에게 겨울의 끝에서 초여름까지 양식이 떨어질 때, 이른바 보릿고개를 버티는 곡물이었다. 쌀은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까지 먹고, 봄이 되면 쌀이 떨어지는데 그 공백을 보리가 메워줬다. 보리밥을 지어 먹었고, 쌀이 부족할 때 섞기도 했고, 더 가난하면 보리, 조, 콩을 섞어 먹었다. 죽이나 떡, 전 등으로도 먹었으며 사료용으로도 사용됐고, 맥주, 소주 원료로도 일부가 사용됐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보리밥은 가난한 밥의 인식이 강했지만 1980년대 이후 쌀 자급이 안정되고 보리 생산이 줄어들면서 보리가 오히려 건강식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4. 오늘날의 보리
보리는 밀, 쌀, 옥수수만큼은 아니지만 4~5위 권의 주요한 곡물이다. 최근엔 연간 약 1억 4천만 톤 안팎으로 생산되고 있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 스페인 등 주로 온대 냉랭 기후 국가들이 주요 생산국이다. 전 세계 보리의 절반 이상이 가축의 사료로 사용된다. 맥주 산업에서 보리는 필수 원료이며, 일부는 위스키 등 증류주에도 사용되고 있다. 일부가 밥, 빵, 국수 등의 형태로 식용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쌀이 중심이 되어 보리 재배 면적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상태이다. 예전의 보릿고개처럼 보리가 없으면 굶는 것이 아니라 쌀밥에 보리, 현미, 잡곡을 넣어서 건강을 챙기는 몸에 좋은 잡곡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보리차, 식혜, 엿기름에 사용되고 일부는 맥주,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보리밥은 건강식 메뉴로 자리 잡았다. 보리는 밀과 쌀보다 가뭄과 추위에 강해 기후 위기 시대에 주목받는 곡물이다. 하지만 극단적 기상 현상에는 마찬가지로 취약하며, 병해충 분포가 변하면서 변동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 작물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러 작물을 함께 재배해 기후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전략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