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맥주의 기원
인간은 곡물을 저장하다가 우연히 물과 섞여 발효되었고 약간 취하는 음료가 생겨났다. 이것을 일부러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기원전 4000~3500년경이고,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유적에서 발아 보리, 발효된 곡물음료의 흔적, 맥주를 뜻하는 쐐기문자 기록 등이 발견된다. 초기 맥주는 지금처럼 맑고 탄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걸쭉한 죽이나 수프 같은 곡물음료에 가까웠다. 보리, 밀 등 곡물을 발아시켜 말리고 으깨서 물에 섞고 자연 발효시키면 알코올이 조금 들어있고 영양도 어느 정도 있는 곡물죽 형태가 된다. 고대 사람들에게 맥주는 깨끗한 물이 귀한 시대의 비교적 안전한 수분 공급원이었고, 칼로리, 비타민 B군을 공급하는 액체 형태의 빵 같은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2. 고대의 맥주
메소포타미아는 맥주 문명의 원조이다. 수메르, 바빌로니아 문명에서 맥주는 이미 생활필수품이자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수메르 점토판에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와 맥주 배급 기록이 남아있다. 맥주 여신 ‘닌카시’를 찬양하는 시에는 맥주 레시피에 해당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맥주는 일상적인 음료였다. 피라미드 노동자들에게 빵, 맥주, 양파 등이 일종의 임금으로 지급됐다는 기록도 있다.
3. 중세에서 근대의 맥주
중세 유럽에서 맥주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곳은 수도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원은 문자, 기록, 기술이 쌓이는 곳이었고, 맥주를 자급자족하고 순례자 접대나 판매용으로 생산했다. 수도사들은 맥주의 위생, 품질, 저장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 과정에서 지금의 맥주에 가까운 기술이 축적된다. 수도원 맥주 전통이 트라피스트 맥주, 벨기에 수도원 스타일의 에일 같은 계보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기 맥주는 여러 가지 허브, 향신료를 넣었는데 중간부터는 홉이 거의 표준이 되었다. 홉은 쌉쌀한 맛과 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항균, 보존 효과 덕분에 맥주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맥주는 크게 따뜻한 온도에서 발효시키는 에일과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키는 라거로 나눠지는데, 15~16세기 중부 유럽에서 차가운 지하 동굴에서 발효, 숙성시키는 방식이 발달하면서 라거 스타일이 널리 퍼졌다. 19세기 냉장 기술, 효모 연구가 발전하면서 대량생산에 안정적인 라거가 전 세계의 표준이 되고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가 되었다.
4.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이후 맥주에도 과학과 산업 기술이 접목된다. 온도 조절이 가능한 냉장 기술의 발달로 라거 생산이 세계 어디서나 가능해졌다. 제분, 맥아 생산 설비의 발달로 균일한 맥아를 제조할 수 있게 되었고, 파스퇴르의 연구로 오염 방지, 안정적인 발효 관리가 가능해졌다. 이 덕분에 동네마다 맛이 다른 수제 맥주에서 어디서 마셔도 같은 표준화된 맥주로 구조가 바뀌게 된다. 이 시기부터 글로벌 브랜드가 생겨났다. 필스너가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20세기 들어 하이네켄, 카스, 아사히, 버드와이저, 기네스 등 각국의 대형 브랜드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5. 오늘날의 맥주
전 세계 맥주 생산량은 대략 연간 1000억 리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정확한 숫자는 매년 바뀌지만, 인류가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란 것은 변함이 없다. 중국, 미국, 브라질, 멕시코, 독일 등이 주요 생산국이며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한국, 일본 등이 1인당 소비량이 많다. 1990년대 이후로 미국, 유럽, 한국 등에서 수제 맥주가 인기를 얻고 있다. 소규모 양조장이 늘어나면서 옛날 전통 스타일과 실험적인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가 쏟아지고 있다. 대형 라거에서 원료, 향, 지역성을 강조한 맥주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흐름이다. 맥주는 보리, 물, 홉, 효모로 만들어지는데 기후 위기는 이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기후 위기로 인해 맥주 가격, 맛, 스타일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맥주를 마시게 될지는 양조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환경과 농업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다.